작은 우주가 탄생했다.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에 쪼끔 눈물이 났다. 포대기에 쌓여서 나온 아이는 작고 까맸다.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에, 분명히 나를 알아본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 배에서 들었을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었다. 이름은 박서아. 朴曙阿. 새벽 서에 아름다울 아자를 썼다. 새벽이 밝아오는 풍경처럼 분명한 희망과 가능성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 주변에서는 모두 날 닮았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아들은 어렸을 때 훨씬 못생겼다, 저렇게 예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닮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를 향한 애정은 이렇게나 복잡미묘하다. | 아직은 실감이 안나지만,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가면서는 처음으로 가족 셋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한테는 한동안 우리 가족의 품이 온 우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앞으로 나한테 또 하나의 우주일 것이다. | 조리원에서 처음으로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잠든 순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중에 미운 짓을 할때마다 이 순간을 떠올려야겠다.
대상포진에 걸렸다. 임신과 출산은 엄마가 했는데… 병은 내가… | 조리원 아가들 전체에게 옮길 수 있다고 해서 조리원에서 못 지내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했다. | 서아는 점점 더 자주 웃는데, 이게 진짜 웃음인지 그냥 아기가 짓는 표정 중에 하나인지 모르겠다. 목욕하고 맘마 먹은 뒤에 포대기에 쌓여있는 서아는 늘 웃고 있다. | 산후조리원은 사실 어색하다. 아이보다는 엄마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그런거겠지만, 묘하게 육아에서 조금씩 소외가 되는 느낌도 들고… 여러모로 불편해서 어쩌다 산후조리원이 이렇게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서아와 윤진이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 서아 탯줄이 잘 떨어졌다!
조리원 제일 고참인 1번을 거쳐서 집으로 왔다. 오기 전 집에서 (윤진이가 시키는대로) 각종 아기 물품을 씻고 정리하면서 준비를 했다. 분유 포트, 젖병 소독기, 열탕 소독, 홈 캠… 지금은 어디에 뭐를 어떻게 쓰는 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열심히 설명서를 살펴보는 중이다. 지니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아는 종종 윤진이 품에 안겨서 자는 사진으로 보고 있다. | 조리원 퇴소 당일 날 운전이 너무 떨렸고, 집에 와서는 아기 침대 안에서 서아가 누워있고 그 옆에 지니가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집에서 함께 지낼 가족의 첫 풍경이었다. | 집으로 온 서아는 평소 자던 환경이랑 달라졌는지 깊게 못자고 자주 깬다. 어쩌면 조리원에서도 매번 이랬는데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건지도 모른다. 당분간 잠을 제대로 못자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윤진이는 오자마자 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급하게 할머니가 집으로 오셨다. 서아는 산후도우미 - 할머니 - 아빠 품을 옮겨다니면서 먹고 자는 중이다. 한 아이를 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분유를 바꿨는데 배앓이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다시 조리원 분유(일루마)로 바꿨다. 역시 비싼 게 좋은 건가 보다. 젖병도 배앓이에 좋다는 젖병(닥터 브라운)으로 바꿔보았다. 다시 조리원에서처럼 잘 먹기 시작했다. 젖병도 역시 비싼 게 좋은 건가 보다. | 지금도 여전히 서아는 대체로 산후도우미 - 할머니의 품을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고 있고, 밤에는 종종 내 품에 안겨서 자기도 한다. | 하루 중에 가장 마음이 놓이는 말은 서아가 분유 120ml를 쭉 먹고 푹 잠들었다는 소식이다. 1차 접종에서는 생식기 / 태열 / 머리에 숨구멍 / 설소대 등 궁금한 게 잔뜩 있었는데, 다 별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부모의 걱정은 늘 조금씩 넘친다. | 윤진이가 병원에서 돌아와 다시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니는 계속해서 서아를 애써 무시하는 것 같고, 서아 분유를 먹일 때 꼭 옆에 와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기 존재를 어필한다. 서아는 하루에 분유를 거의 900ml나 먹을때도 있는데, 이래도 괜찮나 싶기는 하지만 1000ml 이상만 먹지 않으면 괜찮다고 해서 서아가 먹는대로 계속 주고 있다. 무수면 상태를 즐겨야만 육아를 재밌게 할 수 있다.
서아 탯줄로 도장을 만들었다. 서아는 여전히 내가 퇴근한 시간부터 잘 안 자는데, ‘아 혹시 내가 안아주는 게 불편해서 안자나…’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어디선가 엄마의 냄새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윤진이 옷을 입고 서아를 안아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제 모빌이나 초점책을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고, 윤진이가 아기띠로 안아서 재우고 있는 사진을 자주 받는다. | 서아를 목욕시키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목욕 독점을 자처했다. 목욕을 시킬 때는 먼저 노는 것처럼 볼도 만져주고 재밌게 놀아주다가 자연스럽게 머리를 적셔주어야만 한다. 무수면 상태는 아직도 이어지는데, 솔직히 새벽에 아이 울음소리보다는 윤진이의 손짓(내 몸을 툭툭 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훨씬 많다. 아이 울음 소리는 엄마한테만 더 잘 들리나보다.
다시 서아가 잘 자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무수면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얼굴이 점점 더 하얘지고 있고, 눈은 더 까매지고 있다. 속눈썹이 더 자랐고, 손아귀 힘이 늘었다. 유모차에 태우거나 아기띠로 안아서 밖으로 처음 외출도 해보았는데, 나가면 아직은 바깥 구경을 하기보다는 슥 잠들어버린다. 그래도 이런 모든 시간이 어딘가에는 축적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매 순간을 재밌게 보내고 있다. 아이가 생겼다는 실감을 점점 하게 되고, 미루지 않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무수면 육아를 해보니, 애정을 주는 힘은 결국 체력이다.
품에서 잘 자다가도 눕히면 우는 일상이 반복이다. 그때만 넘기면 훨씬 더 잘자는 것 같기도 한데, 우는 아이를 두는 것 만큼 어려운 게 없다. | 50일 사진도 찍었다. 아기 사진을 볼모로 패키지 결제를 반강요하는 업체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돈을 내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 이제 밤잠 패턴이 생겼지만 아직도 새벽에 1-2번씩은 꼭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윤진이의 품에서 다시 잠드는 날이 많다. | 할아버지가 서아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니,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 어서 빨리 엄마의 유전자가 서아에게 발현되었으면 좋겠다. |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과 숲길과 좋아하는 카페로 산책을 나간다. 이제는 조금 바깥 구경을 흥미롭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드디어 서아는 눕혀놔도 조금 칭얼거리다가 혼자 푹 자기 시작했다.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품 안에서 자는 걸 가장 좋아하고, 대부분의 사진에서 서아는 코알라처럼 엄마나 아빠에게 매달려있다. 조금씩 옹알이도 시작해서 말 거는 재미가 생겼다. 옹알옹알하면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발버둥을 엄청 많이쳐서 할아버지는 급기야 서아를 버둥이라고 부른다. | 종종 낮에 잠투정을 부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있다. 서아는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한데, 내려간 입꼬리가 너무 귀여워서 우는 사진을 자주 찍는다.
서아가 잠을 잘자서 무수면 상태를 벗어나는가 했는데, 다시 혼자 잠들기를 거부한다. 눕히려고 방에 들어가는 순간 울기 시작한다. 아마 자기를 혼자 눕히려고 한다는 의도를 방의 온도 습도 밝기 모든 것을 통해 알아채는 것 같다. | 이제 고개를 드는 터미 타임을 점점 자주 하는데, 서아는 고개를 가누는 걸 가뿐히 하더니 발을 차면서 앞으로 가려고 버둥대기까지 한다. 침대에서 자기 혼자 우연히 뒤집기도 했다. | 강릉으로 놀러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장거리로 차도 타보고, 수영도 했다. 애기 수영장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보니 하찮고 귀여웠다. 곳곳에서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는 서아를 보면서, 아이가 참 귀해진 세상이라는 실감도 한다.
이제 거울을 보면 웃는다. 자기도 자기가 귀여운가보다. 여전히 품에서 잠들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눕히면 여지없이 운다. | 이제 자기 손을 점점 더 빨기 시작했고, 쪽쪽이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 무릎 위에 눕혀놓고 말을 걸면 옹알옹알 꺄르르르륵 하면서 웃는다. 소통하고 있다고 혼자 착각 중이다. | 고개를 거의 다 가누기 시작했고, 이제 누워있으면 계속 버둥거리기 때문인지 옆으로 누워 자는 걸 좋아한다. | 얼굴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해보이기까지 한다. | 윤진이는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아직도 종종 이어지는 무수면 밤이 힘들었나보다.
아기 침대를 졸업하고, 자기만의 침대로 옮겼다. 자연스럽게 서아 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다. 꾸며진 아기의 방을 볼 때마다 아직도 새롭다. 머리 숱이 점점 많아지면서 뜨기 시작했다. 자기 두 손을 점점 더 인식하면서 자기 두 손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복싱 자세를 취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척 귀엽다. | 누구나 장단점이 있겠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다가오는 법이다. 바꿔 말하면 ‘내 ~ 모습을 닮으면 좋을텐데’ 보다는 ‘내 ~은 안닮아야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훨씬 많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한테서 문득 내 모습이 보이는 것보단, 윤진이의 모습을 보는 게 훨씬 즐겁다.
우연히 뒤집기를 성공했다. 자기도 놀랐는지 뒤집고 나서 헤헤 웃었다. 혼자 본 게 너무 아까워서 급하게 카메라를 킨 뒤 몇번 더 유도를 해보았는데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꼬꼬맘 장난감을 처음 보여줬는데 푹 빠졌다. 꼬꼬맘의 도파민에 빠져서 침을 줄줄 흘리면서 터미 타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목욕 시간을 점점 더 좋아하고, 목욕 - 맘마 - 통잠 패턴이 거의 자리잡았다. | 백화점도 데려가봤고, 처음으로 백화점에 있는 수유 공간도 써보았다. 아이가 생기니까 평소에 안 보이던 게 부쩍 눈에 보인다. 수유실, 깨진 인도들, 유모차가 갈 수 없는 계단들, 아이를 배려하는 식당, 아이 데리고 가기엔 눈치보이는 분위기 같은 것들.
종종 힘들게 정신을 쏙 빼놓는 낮 잠투정 시간이 생겼다. “어..? 약간 육아 재밌고 쉬운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꼭 위기가 온다. 함부로 재밌고 쉽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 이제 몸을 잘 가누면서, 아기 의자에도 잠깐씩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뒤집기를 성공한 뒤로 계속해서 잠깐씩 눕혀서 유도를 해보고 있다. 뒤집을 듯 말 듯 하면서 애를 쓰는 게 보이는데, 또 너무 애를 쓰는 게 미안해서 금방 안아준다. |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낮 시간을 놓치면서 일하고 있는 시간들이 종종 아깝게 느껴진다. 주4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 아이가 잠투정 할 때 방법이 있다면… 잠투정을 “나 안자고 아빠랑 더 놀래에에에에!!!!”라고 멋대로 해석하고 육아를 즐기는 것이다.
뒤집기를 성공했다. 성공 뒤 거의 뒤집기 중독 증세로 뒤집기 반복 중이다. 그리고 뒤집기 스킬이 늘어나면서 (우는 것 말고) 의사표현 수단이 생긴 것인지 자아가 좀 더 생겼다. 춘천에 다녀오면서 엄마의 혼을 쏙 빼놓았다. 다음 날 처음보는 강성 잠투정 울음으로 아빠의 혼도 쏙 빼놓았다. 나중에 이 순간을 꼭 보여주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 날 이후로 “어머 서아 너무 순하다~” 라고 하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면 쉽게 대꾸하지 못하고 그냥 웃을 뿐이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이가 100일만 되면 통잠을 자면서 여러모로 편해지니까 100일까지 ‘화잇팅!’ 해보라는 얘기들이다. 7월 29일은 서아가 100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이 되어보니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은 대체로 거짓말인 걸 알게 되었다. 서아는 99일부터 밥을 안먹겠다고 떼를 쓰고, 잠투정이 짜릿하게 늘었다. 자기 머리를 막 집어 뜯기도 하고, 손을 너무 세게 입에 넣고 빨아서 입 천장에 쪼끄만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 100일이 지나니까 이제 또 1년의 기적, 2살 때가 가장 이쁘다, 유치원가면 편해진다 같은 또 다른 신기루들이 들려온다. 아, 막상 그 날이 오면 또 그게 거짓말인걸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믿을 수 밖에 없다.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다고 믿어야만 사막을 걸어나갈 힘이 있는 것이다. 100일동안 서아는 존재하고 크느라, 나와 윤진이는 서아를 키우느라 애썼다. 무수면 상태의 여러 밤들이 떠오른다.
목이랑 팔 곳곳에 빨갛게 올라오는 게 있어서 병원을 가봤더니 아토피 판정을 받았다. 내 안좋은 유전자 일부를 물려줬다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역시 뭐든 윤진이를 닮아야한다. 동네에 있는 소아과의 의사선생님이 친절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 이제 머리카락을 잡아댕기면서 노는 걸 좋아한다. 한번 잡히면 잘 놓아주지 않지만 그 모습이 재밌어서 자주 머리를 내어준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에는 머리털 쯤은 뽑힐 수 있는 희생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직 머리가 풍성해서 다행이다. |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처음으로 맡겨 본 서아는 수유 거부와 잠투정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놀래켰고(사실 정신을 짜릿하게 빼놓았고), 데리러 갔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척 지쳐 계셨다. 아마 낯선 환경을 이미 조금은 아는 것 같다. | 엄마가 연습용으로 떠 준 서아 모자는 오히려 내 머리 크기에 맞춰져있었다. 엄마가 서아의 머리 크기를 과대평가 했다. 2배는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 날씨가 선선해져 동네 카페와 공원을 틈날 때 마다 다니고 있다. 다 큰 서아는 이때의 기억을 다 잊을 지 몰라도, 몇달 혹은 몇년 뒤의 서아는 이때 마구 다닌 기억을 통해 세상을 탐험할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발 쪽에 손을 대주면 손을 밀면서 조금씩 포복을 시작하더니 금세 혼자서도 낑낑거리면서 포복하기 시작했다. 뒤집기를 시작했을 때처럼 포복 중독이 되어 밤새 힘들어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하루 정도는 애쓰면서 열심히 하더니 다시 평화로워졌다. 머리가 조금 길어서 이제 머리삔을 꽂을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 할아부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 울기 전의 몇 단계가 있다. 먼저 입꼬리가 슥 내려갈랑말랑 하면서 언짢음을 표현하고 -> 입꼬리가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면서 울음 전이라는 걸 알리고 -> 마지막으로 대자로 누워버리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내려가는 입꼬리가 너무 귀여워서 매번 웃는데 그럼 서아도 입꼬리가 내려가다말고 ‘얘가 왜 웃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이제 누워있는 건 지겨운지 눕혀놓으면 바로 ‘읏~짜’해서 엎드린 후에 이런저런 구경을 한다. 모빌은 질렸는 지 이제 잘 안쳐다보고, 병풍이나 거울을 보면서 도파민(침 줄줄)을 채운다. | 100일 사진도 찍고 왔다.
잠투정이 너무 심해져서 이제 이가 나느라 아프거나 간지러운가보다 싶었다. 마침 3차 영유아 접종이 있어서 병원에 가보니 그냥 잠투정인 것 같다고 하셨다. 아주 어쩌면 잇몸 아래에 이가 자랄수도 있는데, 첫 앞니는 간질간질 하는 정도지 투정을 오래 부릴만큼 아프지는 않을거라고도 하셨다. | 아이 관련된 글들을 보다보니 원더윅스, 이앓이, 배앓이 등등 아이가 우는 이유가 한 10억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원더윅스는 무려 십 몇차까지 있다. 이정도면 그냥 기본이 마구 자라면서 투정부리는 원더윅스고 어쩌다가 조용한 날들이 있는 게 아닌지. 아이는 그냥 우는 것으로 밖에 표현을 못하니 자주 운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나 졸려!’ ‘나 배고파!’ ‘나 심심해!’ ‘나 간지러!’ ‘나 답답해!’ 라고 말한다고 생각하면 귀엽다. | 아직 낯가리는 시기는 아니라고 하던데 자기한테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얼굴은 분명 아는 것 같다. 할아부지 할무니를 보면 입꼬리가 먼저 슥 내려간다. | 이제 두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고 내 얼굴을 끌어당기거나, 두 손으로 내 양쪽 뺨을 한번에 때리면서 노는 박력있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아직 내 머리가 풍성해서 괜찮다. | 이제 입에 닿는 건 뭐든 앙- 하고 물고 있다. 엄마 허벅지, 아빠 볼, 꼬꼬맘, 손수건, 뱀인형, 가리지 않고 서아의 입에 들어간다.
첫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수영장 있는 호텔로 가봤는데, 호텔에 갇혀 육아 집중 전지 훈련을 하게 될 줄을 몰랐다. 환경이 바뀌니까 서아가 잠을 잘 못잤고, 특히 자기 방에서 분리 수면을 하다가 호텔에서 함께 있으니 하루 종일 칭얼거렸다. 30분이라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와인도 들고 갔는데 착각이었다. 수련회에서 조교 몰래 떠드는 것처럼, 새벽에 불이 다 꺼진 채로 서아가 깰까봐 몰래 쪼끔씩 먹다 왔다. 크래커를 녹여먹자니 좀 서러웠다. | 이나네에 들려 휴가를 마무리 했는데, 가서 이나 장난감을 다 맛보며 재밌게 놀다왔다. 이나도 서아한테 점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한번씩 서아를 만져보기도 하고,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아기 둘이 맘껏 노는 풍경을 보니까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듬뿍 느껴졌다. 호텔보다 이나네가 더 낫다. | 잠투정을 부릴 때는 얼굴을 막 긁어서 얼굴에 상처가 나서 무척 속상했다. 할아부지는 서아 얼굴 상처를 보고 일진 언니 같다고 하셨다. 듣고 보니 중학교 때 담배를 물고 나한테 핸드폰 빌려달라고 다가온 학교 무서운 누나의 머리 스타일이랑 상처가 서아랑 비슷했다. | 3박 4일 일정이 생겨서 처음으로 서아를 2-3일 정도 못보고 지냈다. 서아가 아빠를 찾는 느낌으로 좀 칭얼대길 조금 바라기도 했는데, 사진으로 받은 서아 근황은 너무 행복해보였다. 이나 이모 이모부 할머니 할아부지 모두에게 잔뜩 사랑을 받으면서 아빠 생각 따위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 서아는 2-3일 사이에도 조금 자라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 걸 놓치지 않으려면 야근 따위 절대 하면 안된다. | 잠투정을 조금 부리는가 싶더니 다시 통잠도 종종 자고, 밥도 잘먹고 있다.
때는 2025년 9월 4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안부 겸 일어났는지를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소아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서아가 없었다. 어? 서아 어디갔지? 어쩌면 윤진이가 새벽 수유를 마치고 서아를 거실에 재웠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거실로 가보았다. 거실 어디에도 서아가 없다. 이때부터 가슴이 막 두근두근 거리고,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다 들었다. 그 상상은 너무 무섭고 놀랍고 기상천외하고 생생해서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다. 다시 한번 서아 방에 가서,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어쩌면 얘가 미스테리한 방법으로 침대 가드를 넘어서 침대 아래로 가버렸을 수도 있고, 사실 우리 몰래 이미 걸음마를 마스터 해서 우리가 잠들면 집을 돌아다니는 걸수도 있고, 어쩌면 윤진이가 우리 침대로 데려와서 잤는데 내가 모르고 서아 방에서 찾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방을 훑어봤다. 어? 근데 침대 한 가운데가 살짝 볼록하다. 매트리스와 시트 사이에 인형 같은 게 있나 싶어서 슥 만져보니, 꿈틀댔다. 놀라서 얼른 시트를 벗겨보니, 서아가 방금 막 잠에서 깨 ‘오잉? 아빠 나 왜 깨워 갑자기?’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도감과 함께 철렁 했던 가슴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서아가 없어졌거나 침대 시트 아래에 사고로 끼인 줄 알고 눈물이 쬐금 날 뻔했다. 그냥 편하게 그 사이에서 자고 있는 거였다.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침대 맡에 있는 캠 녹화본을 돌려봤다. 잠들기 시작한 서아가 꿈틀꿈틀 대면서 침대 가장자리로 가더니, 침대 가드를 발판삼아서 침대 시트 아래에 몸 반쯤이 쏙 들어갔다. 들어가서 포근한 게 좋았는지, 조금씩 조금씩 기어가서 온 몸을 시트 아래로 넣더니 몇시간에 걸쳐 침대 중앙으로 기어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쌔근쌔근 자다가 가슴이 철렁한 아빠가 침대 시트를 열어 재끼면서 깨버린 것이다. 이 날 아침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또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 평일엔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문으로 귀여움을 잔뜩 받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의 세상에서 서아가 가장 귀여운 아이인줄 알고 있다. 주말엔 이나의 돌잔치도 가고 처음으로 교회도 다녀와봤다. 만나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서아는 나랑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쪼끄만 나인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법이다. 애정을 가진 상대를 바라볼 때 객관적인 외모 바라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한 주가 수월하게 흘러갔다. 서아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어…? 육아 쉬운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말을 누군가에게 하면 얼른 그 말을 퉤퉤퉤 취소하라고 한다. 그럼 나도 서아 땜에 못자던 무수면의 날들과 이유없이 분유를 계속 안먹어서 눈물이 핑 돌던 날을 떠올리면서 얼른 퉤퉤퉤 취소한다. 맞다, 아이들은 오늘까지 정말 모든 게 이래도 되나 싶게 순하다가도 당장 내일부터 또 이래도 되나 싶게 밥을 안먹고 안자고 찡얼거리기 마련이다. | 아직 낯을 가리지는 않는 것 같은데,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아는 건 확실하다. 특히 엄마랑 있으면 어딜가나 편안하게 잘 자고 잘 웃는다. 이 말은 쪼금 무서운데, 엄마가 없으면 어딜가나 쪼금 찡얼거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라서 그렇다. | 이번주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지니 모두 자주자주 만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지니랑 있었던 날은 이상하게 또 밥을 거부하고 찡얼거렸는데, 아마도 낯을 가렸다기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아의 미묘한 잠투정과 재워야 할 타이밍을 캐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할머니는 서아가 밥도 안먹고 엉엉 흑흑 거리면서 찡얼거리는 게 너무너무 속상해서 온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 줄 잘 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서아를 찍는다고 집 구석에 있던 카메라를 들고오셔서 투박한 경상도 남자의 (실은) 따듯한 마음을 보여주셨다. | 이제 누군가에게 안겨서 잠드는 걸 잘 안하고, 잠이 오는 신호를 보냈을 때 딱 침대로 데려가서 눕히면 금방 잠든다. 아, 정말 수월한 한 주였다. 퉤퉤퉤.
한 주간 엎드려뻗쳐 자세에 중독되어 있었다. 자다 일어나서도 한번 엎드려뻗쳐, 밥먹다가도 엎드려뻗쳐, 기저귀를 갈다가도 엎드려뻗쳐… 기저귀 갈이대에서 온갖 스킬(뒤집기, 엎드려뻗쳐, 배밀이)을 해버려서 이제 기저귀 갈이대를 치웠다. 기어가려고 하는데 마음은 안되니까 엎드려뻗쳐 자세로 앞뒤로 흔들면서 기어가는 흉내만 낸다. 너무 열심히 애써서 기어가고 싶어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너무 열심히 해서 이상하게 안쓰럽기도 하다. 또 하나 스킬이 늘어서인지 찡찡거리는 시간이 좀 늘었고, 맘마는 한동안 잘 먹다가 조금 줄어서 꼭지를 한 단계 더 올렸다. |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신도림에도 다녀오고, 목동에도 다녀오고, 친구들도 놀러왔다. 3개월 차이나는 윤호를 보니 서아는 무척 발달이 빨랐고, 몸집이 길고 작았다. 윤호는 서아에 비해 너무 차분하고 몸도 단단하고 두꺼워서 겨우 100일 차이인데도 큰 형아 같았다. 2살 차이나는 이준이가 서아 앞에서 엄청난 재롱을 부려서 서아의 육성 웃음소리를 많이 들었다. 서아는 이준이를 인간 꼬꼬맘으로 아는 것 같다. 진채는 이준이한테 무려 아기 골프채를 선물했고, 경연이(이준이 엄마)의 표정은 진채를 한 대 칠 기세였다. 이준이는 한동안 집안에서 아기용 골프채로 아기용 골프공을 날릴 게 분명하다. 아기들이 모이니까 집이 북적북적했다. | 목동에 가서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지니와 다 함께 동네 산책을 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을 즐기면서 유모차 안에서 낮잠도 오래 잤다. 할아버지가 끄는 유모차 안에서 잠든 서아의 모습은, 아마 서아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다.
윤진이가 한 주간 호주를 다녀오게 되면서 혼자서 서아와 있게 되었다. 사실 혼자라기 보다는 (윤진이가 없는 틈을 타 마구마구 보러 오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지니와 대부분 함께였다. 처음 2-3일은 서아가 너무 잠을 못자고 칭얼대서 (혹시 엄마가 없는 걸 아나… 아빠 말고 엄마가 더 보고싶나… 싶은 마음에) 밤마다 혼자서 좀 울고 싶었고, 그 외에 낮시간은 서아가 무척 잘 있었다. 매일 긴장을 하고 자서인지 잠은 잘 못잤지만 서아가 조금만 울어도 잘 깰 수 있게 되었다. | 진짜 ‘혼자’ 육아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보는 일은 사실 아이를 잘 안아 주고, 맘마 먹이고, 놀아주는 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온갖 집안일, 아이 옷과 손수건 세탁, 분유통을 잘 씻고 분유 포트를 늘 채워놓는 일, 쪽쪽이를 잘 소독해 놓는 일, 그 와중에 내 끼니를 후딱 먹는 일, 아이가 자는 틈을 타 내가 씻어야 하는 일, 중간중간 급한 업무를 봐야 하는 일 등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이 육아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 다행히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부모님은 올 때마다 서아가 잠깐 잘때마다 함께 거실에서 잠시 체력 이슈로 기절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밀린 업무를 처리했는데, 나 빼고 모두(서아, 엄마, 아빠, 지니)가 잠든 조용한 집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 서아는 윤진이가 없는 동안 엄지손가락만 빨기, 푸레질을 새롭게 하게 되었고 1-2일 정도 또 중독 증세를 보였다. 하루하루가 다른 모습이 아직도 신기하다. | 잘 지냈던 일주일 같기도 하고, 윤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보낸 일주일 같기도….
윤진이가 돌아오니 서아가 조금 더 이뻐졌다. 미묘하게 다른 머리 핀 위치, 머리띠의 묘한 높낮이, 머리결의 정리 같은 것들은 엄마의 손을 따라갈 수가 없다. 서아는 오자마자 신도림의 가족들도 만나고, 목동의 엄마 친구네 집도 놀러가고, 목동에 간 김에 목동 할아부지네도 들려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또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같이 레스토랑도 가고, 백화점에 들려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제 바깥에 나가서 엄마 품에서도 잘 자기 때문에 어디든 데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 품에서는 왜 잘 잠을 못자는 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생길때마다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 추석 연휴의 첫날에는 용인에 들렸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미루고 미뤘던 거대 응가를 발사해서 급하게 휴게소를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 혼자 있었다면 크게 당황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거대한 응가를 닦았을 텐데, 윤진이가 함께여서 다행이다. 시트에 마구 흘러내리는 응가를 손으로 막고, 급하게 서아를 들어서 휴게소 화장실로 향하던 윤진이의 헌신을 잊을 수가 없다. 용인의 친척집에서는 책상에 있는 커피를 엎어 서아 옷과 윤진이 바지를 다 적셨다. 커피가 식어서 다행이었는데, 생각할 때마다 아찔하다. 여벌 옷을 넉넉하게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더 필요했다. 어쩌면 서아 옷 말고 우리의 옷도 여벌 옷이 필요할 지 모르겠다. | 다음날엔 집 근처의 몽중헌에 들려서 밥을 먹었는데, 서아를 안고 있겠다고 자원하는 어른들(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이 많아서 덕분에 모두가 편하게 밥을 먹었다. 역시 한 아이를 키울 때는 온 마을이 동원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드디어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오랜 기간 이유식 집착을 하던 윤진이가 집착 상태에서 벗어나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이미 윤진이가 생각해둔) 식단을 짜고, (이미 윤진이가 다 알아봐 두었던) 그릇들과 식기를 사고, (이미 윤진이가 다 알아봐 두었던) 재료들을 샀다. 첫 이유식은 미음, 오트밀, 애호박, 청경채, 소고기 정도만 먹기 때문에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다. 재료들을 하나하나 다지고 삶고 소분해서 얼려두었다. 결심을 하고 이것저것 왕창 산 것에 비해서 얼려둔 최종 이유식은 너무 쪼꼬미였다. | 처음에는 잘 먹는가 싶었는데, 흘리는 게 80%쯤 되는 것 같다. 3일차가 되니까 입도 잘 벌리고 와구와구 먹는 액션은 늘었는데, 역시나 흘리는 게 80%쯤은 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잘 먹겠지…하는 마음과 입 벌리고 달라는 게 귀엽네… 하는 마음으로 주고 있다. | 추석 연휴 중에는 또 역시나 많든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카 시트에 잠들어 있는 서아를 보면 아기들에게도 사회생활은 힘들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 이제 뚱땅뚱땅 잘 기어다니게 되었다. 바닥에 두면 집안 구석구석 탐험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선이나 화분 같은 것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점점 상호작용을 하는 게 선명해지면서 서아랑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어쩔 때는 방에서 잘 자고 있는 걸 아는데도 괜히 깨워서 놀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침대에 있는 홈캠으로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하게 된다.